지난주 내내 몸과 마음을 내리 누르던 삶의 짐을 과감하게 내려놓기 위해 단단히 각오하고 다시 찿아든 白雪의 북설악 마장터. 심산유곡의 겨울 찬공기가 여전하였지만,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이곳에도 서서히 찿아 들고 있었습니다.
1. 첫쨋날
마음을 되잡자며 이번 비박을 추진한 岳友 조성천씨가 금요일 출발이 많이 늦어질 것 같아 마장터 비박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 하고 먼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로 출발, 직접 드라이빙을 하는 자동차 여행이 익숙치 않아 실타레 처럼 얽힌 고속도로 입구를 찿기가 쉽지않았지만, 주중이라 막힘없이 뻥하고 뚫린 경춘고속도로를 쾌속주행, 서울을 출발한지 불과 2시간만에 용대리 매바위 목적지에 도착, 낮익은 "청암" 들머리로 부터 단단히 채비를 차려 눈길등산을 시작 할 수 있었습니다.
설악 동장군의 기세는 아직 곳곳에 여전하지만 조물주의 섭리인 계절의 변화를 거스릴 수 는 없는듯, 꽁꽁 얼어붙었던 얼음들이 녹아 큰물길로 변한 청암 초입의 넓은 개울을 건너기가 만만치 않네요.(지나번 이곳에서 심하게 넘어졌던 기억도 있고..). 이미 한차례 다녀갔던 길이라 쉽게 올라 갈 수 있으리라 싶었던 마장터 등로 곳곳의 길이 사라져 버리고 개울로 변해 수차례 헤멨지만 해가 지기전 마장터에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저녁 6시경).
조성천씨와 만나기로 약속한 "독거노인"이 살고있다는 비박지를 찿아, 지난번 함께 비박하였던 마장터 개활지를 비껴 오른쪽 산길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계속 올라가다 보니 저 멀리서 초가움막이 보이기 시작하며 안도의 한숨. 이곳에 혼자 살고 계신다는 할아버지는 가끔씩 찿아드는 산객들을 보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곤 한다는데, 기대했던 것 과는 달리 사람의 흔적이 끊긴지 이미 오래인듯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극한의 고립감이 산속의 찬공기와 혼합되어 약간은 스산한 기운, 혹시나 싶어 누군가 계시는지 불러 보았지만 되돌아 온것은 숨이 막힐듯한 적막함뿐...
물기를 잔뜩 머금은 무거운 습설이 초가지붕을 내리 누리고 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겨우 지탱하고 있는 초막 주변은 사람키 만큼 쌓인 눈 때문에 비박지로는 부적당 하다는 판단이 들어 부랴부랴 다시금 지난번 사이트를 구축하였던 개활지로 돌아 나오고 말았네요. 움박으로 향하는 길목근처, 눈의 깊이가 적당한 장소를 골라 바닥눈을 다진후 텐트를 셋업하고, 조성천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기로..
손에 잡히는데로 들고온 캠프라인 1인용 자동텐트, 좀 무겁긴 하지만 오랜된 녀석이라 정이 갑니다. 저녁 6시를 살짝 넘었나 싶었는데 벌써 산속에는 어둠이 짙게 내리기 시작. 혹시라도 다른 비박팀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비가 예보되어 있었던 탓인지 북설악 깊은 산중 마장터에는 그야말로 어둠속 적막뿐 (프리무스 옴니퓨엘의 소음이 고맙게 느껴지기 까지..)
사방은 암흑으로 변했고 예상했던 시간을 한참 지났지만 조성천씨의 모습이 나타나질 않아 차츰 걱정이 되기 시작.(개울위로 나있던 얼음길이 사라져 계곡을 통해 오르는 등로를 깜깜한 암흑속에서 찿기가 쉽지않을듯, 그러나 등산경험이 풍부한 조성천씨라서 괜찮을거란 확신). 무작정 기다리자니 몸도 추워지고 괜한 불안감만 엄습. 일단 짐은 그대로 나두고 왔던길을 되돌아 찿아 나서기로 작정.
눈길을 헤치며 얼마를 가다보니, 불과 몇시간 전 올라올 때 까지도 멀쩡했던 얼음길의 얼음이 순식간으로 꺼지며 몸의 중심을 잃고 계곡물로 빠졌지만 겨우 물속으로 손을 짚어 고꾸라지듯 넘어지는 것은 피 할 수 있었네요.(덕분에 물에 제대로 빠졌으나 꼼꼼한 방수장비들 덕분에 심하게 젖지는 않았슴). 지난번 넘어지며 무릎을 심하게 다쳤던 악몽과 같은 경험도 있어 정신줄이 화들짝 드는 순간, 깜깜한 어둠속 어디선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조성천씨의 목소리가 구세주의 음성처럼 들려옵니다..^^ 드디어 숲속 저 멀리서 희미한 라이트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금새 가까워 지고...얼마나 반가웠던지..^^
도착하자 마자 텐트를 셋업하고 눈을 다져 사이트를 정리하는 조성천씨의 모습이 듬직. 예상했던 것 처럼 등로가 변해 여기까지 찿아오는것이 쉽지 않았다고..(이시간 이후 청암을 들머리로 마장터에 가시는 분들은 반드시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가도 젖지 않을 정도로 방수처리 확실히 한 중등산화와 방수게이터를 준비 하여야 합니다)
깜깜한 산속에서의 목놓아 기다리던 만남을 반기며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어둠은 하염없이 깊어만 갔고, 빰을 촉촉히 적시며 신비함을 더하던 안개비가 점차 강한 빗줄기로 변해 비와 한기를 피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그렇게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다시 찿아온 설국에서의 첫밤이 저물어 갔고, 다시금 이름모를 새소리가 마장터의 적막을 타고 흐르는 새벽이 찿아 왔습니다.
비를 머금어 더욱더 순백으로 변해 마치 한폭의 흑백 동양화인듯, 텐트 밖으로 살며시 보여지는 마장터의 새벽풍경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2. 둘쨋날
밤새 내리던 산중우(山中雨). 아침이 되자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마치 거짓말처럼 화창한 햇살이 쨍쨍. 눈밭에 반사된 햇빛으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눈(雪)의 결정들로 눈(目)이 부실 정도...
온천지가 백설에 뒤덮힌 깊은 겨울산속에 찿아온 봄날같은 따듯한 날씨를 즐기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던 둘쨋날의 모습들
밤새 쉼없이 내리던 비가 그치더니 갑자기 봄이 찿아온 마장터의 눈밭. 자리를 만들어 누워 설상 일광욕을 즐겼습니다. 따스한 봄기운에 사르르 낯잠. (한숨 자고 일어난 조성천의 얼굴이 봄볕에 벌겋게 익었을 정도...)
엉덩이 깊이의 물을 잔뜩 머금은 습설에 한번 빠지면 발을 빼기조차 쉽질 않네요.
조성찬씨의 권유로 대간령까지 주변 심설등산을 나서봅니다. 지난번 넘어질때 다리뼈 대신 두동강 나버렸던 컴포텔 C3 카본 스틱, 버리지 않고 잘 고쳐 새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고, 다시 이번 마장터 심설등산을 함께 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웃도어링 장비들은 뿌러지고 고장난 곳을 때우고 메꾸며 다시 고쳐 쓰는동안 손에 익어 정이 듬뿍 든 녀석들이 괜히 빠까뻔쩍한 새것들보다 휠씬 더 믿음직스럽고 좋더군요..^^
발걸음이 빠른 조성천씨는 벌써 저 멀리까지 한걸음에 내달아 계곡물에 앉아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네요.
둘쨋날 저녁부터 기온이 급강하하기 시작(산속기온이 단계적으로 쑥쑥 내려가는 것이 피부로 확연히 느껴지는 것이 신기). 설동을 파서 간이화로를 만들었고 장작을 구해 파이어링을 하였습니다. 불이 붙자마자 북설악의 메서운 추위대신 느긋한 여유로움이 맘껏 느껴집니다.
3. 세쨋날
아침까지 마장터의 백설을 촉촉히 적시던 안개비가 비가 갑자기 폭설로 변해 사방이 다시금 눈천지로 변하며 겨울산의 날씨는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했던 세쨋날의 기록. 마장터에는 지난번 처럼 또다시 백설이 하염없이 쏟아지며 온세상이 하얀 눈천지로 변했습니다.
비박동호인들에게 나름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곳이라 주말 토요일엔 비박매니아들이 몇팀정도는 오리라 생각했지만, 비 예보 때문인지 한팀도 들어오지 않아 마장터 전체를 전세 낸 것 처럼 여유롭게 있던중, 갑자기 어디선가 쑥하고 나타난 비박커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것은 둘쨋날 저녁무렵. 일요일 새벽 일찍 눈이 떠져, 신비로운 안개비에 감쌓인 마장터 주변을 거닐다가, 깊은 눈을 파낸 설동에 셋업한 커플의 커다란 티피형 텐트의 모습이 특별해 기록을 남겨 봅니다.(마장터에 쌓여있는 눈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잘 보여 줄 듯)
아침 안개비가 점차 굵은 빗줄기로 바뀌고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기전 이른시간 장비를 챙겨 비박지를 떠나는 커플의 뒷모습이 아련.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 두사람만의 "절대시간"을 즐기는 이들의 독특한 취향이 참 특별하다 싶네요.(어디를 찿아 또 이렇게 일찍 길을 떠나는지..??)
순식간에 지나버린 2박3일간의 흔적들을 말끔히 치우고 눈 내리는 등로를 따라 청암 들머리로 원점회귀. 조성천씨와 함께 올해의 마지막 겨울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깁니다.
* 참고
"청암"으로 내려오다 보니 이틀전 올라갈때 보다 계곡물의 폭이 더욱 넓어진채 길이 또 변해 있더군요. 적절한 방수장비 없이는 건너기 힘든 계곡물 구간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이틀전 올라갈때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겨울동안 계곡 윗쪽으로 깊게 쌓였던 눈이 녹아 눈사태가 난 곳이 있어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마장터로 오르는 일부구간의 등로를 완벽히 휩쓸어 버렸음) 눈사태 당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있었다면 손 쓸틈도 없이 거대한 눈더미에 휩쓸려 파묻혔을듯...(본인의 똑딱이 사진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아래사진), 눈사태로 쏟아진 엄청난 양의 눈무더기를 보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절로 날만큼 아찔한 느낌). 환절기 눈쌓인 겨울산에는 곳곳에 예측 할 수 없는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명심해야 합니다. 이 시간이후 이곳을 찿아가는 분들은 반드시 참고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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