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2015년 7월에 중국에 갔던 길에 여건상 쉽지는 않았지만 일부러 어렵사리 시간을 만들어 꼭 가보고 싶었던 난징의 일본군 대학살 기념관을 찿아갔었습니다.
참혹하리라 예상은 했었지만 참으로 믿기 힘든 잔혹한 학살을 기록한 상상을 초월하는 참상들이 눈앞에 펼쳐지더군요..ㅠㅠ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싶을정도로 충격적인 인간의 악마성을 목격하며 온몸에 전율과 소름이 엄습했던 난징대학살 기념관에서의 느낌을 가급적 생생하게 블로그에 남겨 다른사람들과 함께 공유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포스팅을 못하고 있었네요
난징대학살 기념관에서 느꼈던 전율을 다시금 일깨워 준 것 은 요즘 한참 논란이 되고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화 교과서 논란 때문 ~~
일본군이 난징에 진입해 닥치는데로 학살한 중국인들 숫자가 무려 삼십만명(300,000) 이나 된다는 것 을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찿으면서 알게 되었네요 (기념관 입구를 들어서면 커다랗게 300,000 이란 숫자를 양각해 놓은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잔혹한 학살을 기록한 사진들을 보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들에 말문이 막혀버릴 정도..ㅠㅠ 한명의 일본군이 하루종일 최대로 죽일 수 있는 중국인의 숫자가 1200명 이었다고 합니다. 더이상은 힘들어서 도저히 쏴 죽일수도 칼로 찔러 죽일 수 도 없었다고~~
난징대학살 기념관에 생생하게 남은 당시 학살 사진들 중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어느 중국 일가족의 참극을 기록한 영상물. 왜 끌어 내는지 모르는듯 두리번 거리다 갑자기 살해 당하는 남편,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에 오열하는 아내, 그 아내를 보란듯 차례로 윤간하는 일본군들, 마지막으로 나체로 벌거벗겨진채 실성한 아내를 둘러싸고 앉아 웃고있는 악마와 다름없는 일본군들~~ ㅠㅠ
사진 속 희죽대는 일본군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있어 지금이라도 이 악마놈의 신상을 알아내려면 얼마든지 알아 낼 수 도 있겠다 싶을 정도.(당시 현장에 있던 영국인 John Rabe 라는 사람이 찍은 영상기록이란 설명)
아이는 잔혹하게 살해되고 남편은 산채로 묻혀 죽임을 당하고,
절말에 절규하는 아내는 일본군에게 차례로 윤간 당하고,
하느님, 도대체 왜 이런일이~~!!!
난징대학살 기념관 어느동상 밑에 새겨진 문구 입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 전시실로 내려가는 입구부터 음침한 기운이 엄습 하더군요.
난징시내를 흐르는 강변에는 일본군에게 살해당해 버려진 시체들로 가득
당시 집단학살 당한 주검들이 발견된 그자리에 세워진 난징대학살 기념관
정말 눈뜨고는 볼 수 없을정도의 처참한 광경
일본군의 잔혹한 대학살을 기록한 영국인 종군기자 John Rabe 의 생전 음성
"Forgivable, but unforgettable !!!"
(그래 용서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절대 잊지는 못할것이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나오는 출구에는 높은 천사의 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천사의 탑 밑에는 "화평"이란 큰 글귀가 세겨져 있었는데 그 의미가 정말 크게 다가오더군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지만, 세상 어디를 가든지 반드시 볼 수 있는 일본관광객들은 거짓말처럼 이곳에는 정말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더군요. 자기들이 저지른 악마적인 대학살을 차마 쳐다 볼 용기가 없었던 모양 입니다. 얼마전 이 난징대학살 기념관이 유네스코 기념물로 지정 되면서도 참 말들이 많았쬬. 난징대학실 기념관의 유네스코 기념물 지정을 교묘히 방해하던 일본의 태도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은 아마도 직접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찿았었던 그때의 기억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일겁니다.
그거 아시나요??
일본 국민들 10명중 7명은 난징대학살은 일본군이 저지른게 아니라 중국인들이 서로 죽고 죽이고 한 사건을 일본에게 뒤집어 씌운 것 으로 알고 있다는거...ㅠㅠ 주변에 일본사람 있으면 한번 물어보세요. 너무나 당연한듯 그렇게 말하는 거에 깜짝 놀랄겁니다. 그리고 난징대학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일본의 학자들의 경우 당시 살해당한 중국인의 숫자가 30만명 이라는거는 다 중국인들 지어낸 거짓말이고 대략 3만명 정도 였을거라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사실 하나 !!! 일본사람들 중 일본 야쿠자가 명성황후를 새벽에 끌어내 능멸하고 살해한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한국의 명성황후가 누군지도 모르죠.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아는 일본사람은 아마 1000명 중 한명, 아니 천명 중 한명꼴 정도 될 겁니다.(그나마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일본인 정도만~~)
이것이 바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실상 입니다.
남에게 폐를 끼지지 않을려고 노력하는 일본의 "메이와꾸"문화에 호감을 느끼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일본인 특유의 잔혹하고 비열했던 과거를 완전하게 지워버리려는 일종의 소시오패스적 메이와꾸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 잘했던 역사던 잘못했던 역사던 역사는 있는 그대로 후세에게 가르치고 그 역사에서 미래를 배워야만 합니다. 역사를 통해 반성 할 것 은 반성하고 자랑 할 것 은 자랑해야죠.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진실만을 기록하게 된다면, 역사 속에 영원히 기록되는 것 이 두려워서라도 권력의 영위를 위한 독재의 시도나, 부정선거, 국민을 속이는 기만행위는 자연스레 없어질겁니다. 부정에 맞서다 지금 죽게 되더라도 영원히 역사에 정의롭고 용감하였던 사람으로 기록된다면 누구라도 죽음앞에 비겁하지 않고 정의로워 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분노하며 비판해 왔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이승만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보도연맹 양민 학살사건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학살된 사람들 숫자를 적게는 25만명(인류 최악의 대학살극 중 하나인 30만명이 살해된 난징대학살에 버금가는 숫자임),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많게 잡으면 무려 100만명 이상의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종북빨갱이"로 몰려 경무대 경찰들과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우 관변단체들에 의해 집단학살 당한, 일본의 난징대학살 사건을 능가하는 인류 최악의 학살사건이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땅에서 우리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정부에 의해 자행된 보도연맹 양민학살 사건 입니다. 믿기 힘들죠 ??
(모르시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인터넷에 "보도연맹" 이란 검색어로 한번 찿아보세요. 이승만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무고한 민간인 학살만행을 조금이라도 알게되면 절로 소름이 돋을겁니다. 모두들 쉬쉬하지만 그때 영문도 모르고 학살당한 대한민국 남녀노소 양민들의 시신들이 지금도 수백구씩 발굴되며 그때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국정화 교과서로 쌩난리를 치며 숨기려 해도 진실은 은폐 할 수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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