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록물이 또다시 열렸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입니다. 벌써 두번째입니다. 처음에는 정권의 사주를 받은 검찰에 의해 저질러지더니 이번에는 국회에서 발생했습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란히 몇 십년 앞을 바라봐야 하는 국가의 중대사를 문란케 했습니다. 더욱이 이번에는 민주당마저 한나라당의 이중대 역할을 했습니다. 역대 어느 정권도 남기지 않던 대통령 기록물을 대통령 자신이 앞장서서 메모 한장까지 남긴 역사의 발전이 한나라당에 의해 훼손되고 민주당이 이에 동참했습니다.
비밀로 보호되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열리는 통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전직 대통령이 출판물 또는 언론매체 등을 통하여 공표함으로 인하여 사실상 보호 필요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의결이 있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고등법원장에 의해 그리고 이번에는 국회를 통해 두번이나 열리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두 번이나 부정된 손길을 타게 된 것입니다. 법을 만든 취지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국회의원 3분의 2이상의 의결이란 의미는 헌법을 변경할 때 필요한 정족수와 같습니다. 그만큼 보호해야 기록물이 제대로 남겨지고 보존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이명박 청와대에서 제기한 정쟁으로 촉발된 논란에서 검찰이 고등법원장의 영장을 발부받아 이루어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반납한 기록물과 기록원에 남겨있는 기록물을 대조한다는 명목으로 그 열람이 허용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열람만 가능하게 발부된 영장을 놓고 검찰은 사본을 제작하여 열람검토하는 무리수까지 두었습니다. 법원의 성급한 영장발부와 그 성급한 영장의 취지마저 무색케 만든 검찰의 행동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참여정부 청와대의 관계장관 회의록을 열람하겠다는 의도로 한나라당에 의해 주도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쌀직불금 명단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감추다가 이 문제를 감추기 위해 참여정부가 감사결과를 은폐했다면서 정치공세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이번에 국회를 통해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이렇게 쉽게 열어버리는 행동을 취했습니다.
대통령기록물법이 시행된 지 1년도 안되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하게 예외를 두고 있는 법의 취지를 무시하고 한번은 검참을 동원한 정권이 법원을 통해 기록물을 열어보고, 이번에는 국회가 정쟁의 목적으로 기록물을 열어봅니다. 쌀직불금 명단을 그렇게 감추던 한나라당에게 있어 역사적으로 보존해야할 대통령기록물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공개의 요건을 정한 엄격한 예외조항이 오히려 손쉽게 열어보는 통로로 변질되었습니다. 대통령기록물이 자주 열리는 선례가 생긴다면 앞으로 누가 제대로 기록물을 남기겠습니까? 이미 역대대통령들은 대부분 자신의 기록들을 폐기처분하고 오로지 노무현 대통령만의 기록물이 메모 한장까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기록물을 제대로 남겨놓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이동관, 최시중, 유인촌, 강만수, 어청수, 한승수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추악한 일들을 벌여놓은 자들의 기록물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요?
노무현 전대통령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청와대 회의록을 공개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국회가 정쟁의 목적으로 이런 선례를 남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 전대통령이 스스로 기록물을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록 공개가 두렵거나 곤란한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밝히면서 대통령기록물법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을 우려하여 노 전대통령이 직접 공개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미래에도 대통령기록물법이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직접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손수 법의 취지만은 지키겠다는 의지였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엄격히 그 비밀을 보호해야할 사초를 마음대로 열어보는 행위를 서슴치 않고 했습니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행위는 현재보다 미래를 향해 엄중한 경고를 남깁니다. 쌀직불금에 대한 참여정부의 장관회의는 지나쳐가는 통로에 불과합니다.
대통령기록물을 보호하는 방파제에 일단 작은 구멍을 하나 뚫어놓은 격입니다. 앞으로도 언제든지 원하면 국가적으로 중대하게 비밀로 보호해야할 사항마저 정쟁의 목적으로 열어보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작은 구멍이 생기면 방파제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온전히 보전된 노무현 전대통령의 기록물이 국가적 차원에서 지켜지기는 커녕 오히려 국가에 의해 수도없이 부정탄 손길에 노출될 위험에 직면했으며, 앞으로 어떤 대통령도 제대로 된 기록물을 남기지 않을 우려까지 양산했습니다.
더욱이 참담한 것은 이런 한나라당의 뻔한 술수에 민주당마저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민주당은 갈수록 대안이 아니라는 믿음만 심어주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노무현 전대통령을 기피하더라도 국익을 고려한다면 대통령기록물법은 스스로 보호할 줄 아는 대의를 품고 있어야할텐데 그러한 큰 뜻마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자신의 정치적 사익에만 충실한 소인배로서의 국회의원들이 민주당에 한없이 많음에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기록물을 길이길이 보존해야할 국가의 중대사를 국가가 스스로 망치고 있습니다. 현재의 권력이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과거를 헤집어 놓으며 미래를 망쳐놓고 있습니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가 검찰을 동원해 망쳐놓았고 이제 입법부인 국회가 스스로 망쳐놓았습니다. 대의를 지키며 원칙과 상식에 충실한 정치인들을 얻을 복이 대한민국에는 주어지지 않았나봅니다. 겨우 얻었던 하나의 복마저 내차버리는 행태가 자행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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