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에 묻혔다. 어제(23일) KBS PD들이 집단 삭발했다고 한다. 김인규 사장이 PD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적60분>을 제작본부에서 보도본부로 이관시켰기 때문이다. <추적60분> 제작진도 보도본부로 발령했다고 한다. 사측은 기자와 PD의 협업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로써 <추적60분>은 기자(보도본부장)의 통제 하에 있게 됐다. 그 보도본부장이 지금의 KBS 뉴스도 통제하는 이다. KBS PD들이 사실상 PD 저널리즘 통제이며, <추적60분> 죽이기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말 그대로 <추적60분>은 KBS의 PD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프로그램 아닌가.
돌이켜보니 항상 이런 식이다. 구본홍 전 사장이 YTN에 입성하자마자 손 본 것이 <돌발영상>이었다. 이병순 전 사장은 <생방송 시사투나잇>을 없앴다. 김재철 MBC 사장 역시 부임하자마자 진상조사를 운운하며 <PD수첩>과의 '내전'을 선포했다. 모두 PD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23일 KBS PD들의 집단 삭발 Photo PD저널
출입처 없는 PD, 국회의원 된 PD도 없네
이 정권은 왜 이렇게 PD를 '미워할까'. 왜 그런지 간접적인 통계부터 하나 재활용하고 넘어가자. 일전에 국회의원 중 PD 출신은 없다고 소개했었다. 15, 16, 17, 18대 국회의원 출신을 조사해보니 그랬다. 한결같이 기자 아니면 아나운서였다. 그 핵심 원인을 '출입처 시스템'에서 찾았었다. 그대로 옮긴다.
"PD 출신 국회의원은 왜 이처럼 보기 힘든 것일까. 일단 유명 앵커나 방송 진행자 또는 방송 기자들에 비해 얼굴이 팔리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18대 국회 총선에서 SBS 아나운서 출신 '유정현 의원'을 통해 드러나듯, 얼굴만 팔리면 금배지 달기 쉬운 정치 환경에서 PD에 대한 선호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신문기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럼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PD들에게는 출입처가 없다는 점이다. 기자들에게는 출입처와 취재원이 있다. 한 곳에 오래 출입하다보면 그들의 이해관계에 '관대'해지기 쉽다. 그러다 보면 내밀한 관계가 성립되는 경우도 생기고, '주고받고'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워진다." http://blog.ohmynews.com/bangzza/263746
PD들은 출입처가 없다. '보따리 장사'다. 경찰, 검찰, 법원, 국회, 청와대 등과 지속적으로 뭔가 주고받을 '거래'가 별로 없다. 권력과의 이해관계에서 상대적으로 PD들은 '담백하다'. 그만큼 권력과 언론 사이의 긴장감에서 PD의 그것은 더 팽팽할 수밖에 없다. PD 출신 국회의원을 찾기 어려운 것도 그래서라고 믿는다.
최근 총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이근행 PD Photo 오마이뉴스 남소연
안수찬 기자의 출입처 비판 "열의 아홉은 감시견 대신 반려견"
안수찬 <한겨레> 기자의 출입처 시스템 비판은 더 '가혹하다'. 작년 10월에 인권연대 '수요산책'에 기고한 '저널리즘의 궁형'이란 제목의 글이 그러하다. 그는 이 글에서 "언론의 출입처 시스템은 감시견 역할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그렇다"는 단서와 함께 이렇게 적었다.
"언론의 존재이유를 망각하지 않고, 날 서린 비판의 눈으로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기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열의 아홉은 '감시견' 대신 '반려견'이 되어 간다. 드물게 비판기사를 쓴다 해도 권력자들의 언어로 보도한다.
그들이 쓰는 기사에서 세상은 권력자, 명망가, 권위자, 유력자의 각축장이다. 여기에 이데올로기는 없다. 진보건 보수건 '파워 게임'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면, 결정적 부패 보도조차 '그 놈이 그 놈'이라 생각하는 필부들의 상식에 지푸라기 하나 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기자의 뿌리에 해당하는 서민들이 감동하거나 분노하지 않아도 큰 상관은 없다. 기자는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다. 스스로 파워 게임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통렬한 비판이다. 백 번 공감한다.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 때마다 '파워 게임의 프레임'으로 투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책임에서 기자들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권력은 이런 보도를 언제나 환영한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서민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니까.
<돌발영상> 당시 노종면 YTN 위원장 Photo YTN 노조
PD 저널리즘 사냥에 나선 정치부 기자 출신 사장들
그런데 그 이름도 희한한 'PD 저널리즘'이 골치다. 출입처도 없는 '것'들이 자꾸 캐묻고 따지고 들고, 그러다 '말썽'도 자주 일으킨다. <PD수첩>의 한미FTA, 황우석 교수 사건, 용산 참사 특종 보도가 대표적인 예다. 최근 천안함 사건의 합리적 의문을 가장 잘 대변한 것도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였다.
권력으로서는 참 껄끄럽기 이를 데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옛날 독재정권처럼 '학살'할 수 없고, 정계 진출이란 명목으로 '포섭'할 여지도 별로 없다. 그러니 더 미울 수밖에 없다. 그 미움은 또한 언론을 장악하려는 욕구와 정비례하여 커질 것이다.
따라서 구본홍, 김인규, 김재철. 이들 모두 정치부 기자 출신이란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80년대 말 친여 성향 기사로 후배 기자들에게 따가운 비판을 받았단다. 5공 찬양 리포트의 주인공도 있고,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다는 이도 있다.
이들을 앞세워 지금 정권은 'PD 저널리즘'을 사냥하고 있다. 말 그대로 '웩 더 독(Wag The Dog)', 꼬리가 개를 흔드는 모양새다. 우루과이전에 3백만명이 거리응원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그 백 분지 일의 응원만 있어도, PD 저널리즘의 '거세'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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